"고인의 싸이월드를
유가족에게 상속한다고?"

한때 가입 회원 수가 3,200만 명에 달했던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싸이월드’가 최근 서비스를 재개했어요. 싸이월드는 미니홈피와 사진첩을 꾸미고, 일촌(친구)의 방명록에 글을 작성해 소통할 수 있는 1세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플랫폼으로, 200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회자되곤 하는데요. 한 시대를 이끌었던 서비스인만큼, 싸이월드의 서비스 재개는 또 한 번 이슈몰이를 하기에 충분했지요.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인기가요가 각종 차트에서 역주행 기록을 세우고, 이른바 ‘세기말 패션’이 다시 유행하는 등 레트로(복고) 열풍이 사회 전반을 강타하는 가운데 싸이월드의 서비스 재개 소식은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세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반갑게 다가왔어요. 기세에 힘입은 싸이월드 앱은 4월 출시와 함께 앱마켓 소셜 부문 인기 다운로드 순위 1위를 달성·출시 한 달 만에 설치 횟수 300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죠.

이렇게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서비스를 확장 중인 싸이월드가 최근, 다시 한번 기존 사용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을 들려줬어요. 바로, 싸이월드가 고인의 일기(다이어리)와 사진첩을 유족에게 전달하는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에요.

 

| 고인의 사진첩을 유족에게 돌려 드립니다.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란?

싸이월드는 최근 이용약관 일부를 수정하고, 가입된 회원들의 이메일을 통해 고지를 완료했어요. 수정된 것은 13조 1항의 내용인데요. 싸이월드는 해당 조항에서 ‘회원이 사망 시 회원이 서비스 내에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그 상속인에게 상속됩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죠.

싸이월드는 왜 갑자기 이용약관을 바꿨을까요? 이번에 재개된 싸이월드의 보유 데이터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미니홈피’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고인의 미니홈피에는 각자의 일기와 사진, 지인들의 방명록 등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죠. 그리고 고인이 된 사용자 중에는 한때 싸이월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유명 배우 A씨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싸이월드 서비스 재개 소식과 함께 해당 배우의 유족들이 ‘고인의 미니홈피를 관리할 수 있게 접근 권한을 달라’는 내용을 담은 요청을 공식적으로 전달했고, 싸이월드의 운영사인 싸이월드제트는 해당 요청에 따라 로펌 자문을 받은 후 약관을 수정하기에 이른 것이에요.

약관에 따르면 “상속되는 게시글의 저작권 중 일신전속권(성질 상 타인에게 귀속할 수 없는 권리)은 상속되지 않으며, 회사는 사망한 회원의 상속인 요청에 따라(상속인 전원의 요청에 한해) 회원의 공개된 게시글을 별도의 매체에 복사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요. 아울러 '상속인이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인 회원의 제적등본, 상속인의 가족관계증명서, 기타 소명을 위해 회사가 추가로 제출을 요청하는 자료 등을 제출'해야 하며, '게시물 가운데 상속인에게 이전할 경우 피상속인인 회원의 비밀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거나 기타 상속인에게 이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게시글'에 한해 서비스 제공은 제한될 수 있음'을 덧붙이기도 했죠. 이는 고인이 생전에 올린 데이터 중 비공개 사진·일기 내용 등은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고인의 잊힐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싸이월드의 약관 수정에 따라 지난 6월까지 접수된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의 신청 건수는 벌써 2천여 건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싸이월드의 행보와 함께 일각에서는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 처리를 둔 찬반 논쟁이 점화되기도 했답니다.

"추억 보존?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지금, 세계 각국의 판단은..."

디지털 상속권 보호에 대해서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기록을 보고 싶을 때 접근할 수 있음’을 이유로 들며 찬성하는 이들과,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경우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달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이들로 의견이 나뉘어요.

이런 논란에 대하여 정확한 판가름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 디지털 유산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현재 국내법상으로는 디지털 유산의 종류와 범위, 상속인의 자격 등을 다루는 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에요. 때문에 우리나라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마저도 디지털 유산에 대해서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죠.

네이버는 자체 ‘디지털 유산 정책’을 두고 유족들이 고인의 데이터 요청을 했을 때, 블로그 게시물 등 공개된 정보에 한해 데이터 백업 및 삭제를 지원하고 있으며, 카카오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스 보호를 우선시하여 데이터는 전면 비공개하고, 가족이 고인의 아이디를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해 사망자 계정 삭제만을 지원하고 있어요. 이외 대다수의 기업도 카카오와 비슷하게 사망자 계정 삭제 요청만 허용되고 있고요.

개인화 서비스·SNS 등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이 증가하면서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사진, 글, 이메일, 동영상 등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에요. 이에 세계 주요 국가와 대표 빅테크 기업들은 한발 앞서 관련 정책과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죠. 독일에서 상속권을 인정한 판결 사례*가 있으며,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디지털 유산의 상속이 가능하도록 법을 제정했어요.

* 사망자가 생전에 페이스북(현 메타)과 맺은 계약을 유산의 일부로 보고 부모가 고인이 된 딸 계정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사망한 15세 소녀의 어머니에게 자녀의 페이스북 계정 접속 권한을 부여한 사례(2018년, 독일연방법원).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애플이 자체 아이폰 운영체제(iOS)에 아이폰 사용자가 자신이 사망할 경우 아이폰·아이클라우드 등에 저장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유산 관리자’를 최대 다섯 명까지 직접 지정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메뉴를 추가하기도 했죠. 이전에 고인의 직계가족에게도 아이폰 개인 계정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유가족이 각종 법률 문서를 제출해야만 심사를 거쳐 계정 삭제만 해줬던 것과 상반된 애플의 행보였어요.


구글도 마찬가지예요. 지메일, 유튜브, 구글 드라이브 등에 대해 계정을 이용하지 않은 지 일정 기간(3·6·12개월)이 지나면 사전에 사용자가 지정해둔 사람이 해당 계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휴면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프로그램을 디지털 데이터 상속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심각해지는 디지털 유산 문제에 따라 지난 7월 6일,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 디지털 유산 보호를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이 법안은 사망 또는 실종자의 데이터들을 기업들이 법적 근거 없이 임의 관리·처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 방점을 두고 사업자(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상속인이 요청하는 경우 사망·실종된 이용자가 작성하거나 보관 중인 정보 관리 권한을 승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만약 이 법안이 여러 절차를 걸쳐 통과·공포된다면 우리나라도 디지털 유산 관련 법적 분쟁이 줄고 유족이 적법한 범위 내에서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기가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법안 발의 전부터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슈에 밀려 여전히 입법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는 점이에요.

앞으로 우리 앞에 남겨질 수많은 디지털 유산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유산 관련 법적 분쟁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관련 법령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요! 유족의 디지털 유산 상속의 권리와 고인의 잊힐 권리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언제,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